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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호 [유튜브로 소통하다] 영상으로 탈바꿈한 기사들의 ‘안주거리’, 어떻게 국민 공감 얻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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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496회 작성일 19-07-3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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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으로 탈바꿈한 기사들의 ‘안주거리’, 어떻게 국민 공감 얻었나

자동차연맹, 유튜브 영상에 ‘국민 시선’ 반영

“당연히 3교대를 할 줄 알았는데 버스 기사 한 사람이 20시간을 일한다고요?” (1**)
“이렇게 기사님들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니까 그간의 일들이 다 이해가 되네요.” (이**)
“아버지 직업이 버스 기사인데 아침 9시에 나가면 새벽 2시~3시쯤 들어오십니다... 울 아빠 파이팅” (윤*)
“이런 어려움이 있는 줄도 모르고 왜 파업하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한 제 자신이 창피하네요. 영상을 보고 느낀 게 많습니다.” (2**)

지난 4월 말 자동차노련이 한국노총 유튜브 채널에 게시한 영상([전지적 버스 시점 Ep1.] 버스기사님은 화장실 언제 가요?)에 달린 댓글이다.
전체 댓글 830여 개 가운데 노동조합을 비판하거나 예고된 파업에 짜증을 내는 댓글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대신 위의 댓글처럼 버스 기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에 공감하고 파업을 지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버스 기사들의 파업은 ‘할 만 하다’는 것이다.
이는 대개 파업이라 하면 얼굴을 찌푸리는 일반 국민들의 반응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영상의 조회 수는 약 27만 회(2019년 6월 기준). 한국노총 유튜브 영상 중 최다 기록이다.
도대체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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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버스 시점? 자동차노련은 MBC 예능 프로그램 ‘전.참.시(전지적 참견 시점)’의 이름을 딴 ‘전지적 버스 시점’을 주제로 에피소드 영상 3편과 공익광고 영상 1편을 제작했다. 에피소드 영상은 버스노동자들이 버스 안에서 일상적으로 겪는 어려움을 나누는 ‘버스기사님은 화장실 언제 가요?’와 여성 버스 기사의 하루를 담은 ‘여자 버스기사 브이로그(VLOG, 일상을 촬영한 영상 콘텐츠)’, 에피소드 영상을 총괄한 정성은 PD의 제작 후기 격인 ‘버스기사 신고한 이야기’ 등 세 가지 이야기로 구성된다. 공익광고 영상은 삼부자(父子) 모두가 버스노동자인 가족의 입을 통해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문제, 중앙 정부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들을 담아냈다. 영상은 성정훈 PD의 총괄 아래 성정훈 PD와 조미현 작가가 공익광고 영상을 만들고, 정성은 PD가 에피소드 영상을 맡았다.
자동차노련이 조합원이 아닌 국민을 대상으로 투쟁 영상을 기획·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위성수 정책실 부국장은 “‘우리(조합원)’가 아닌 우리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에서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이는 노동조합의 ‘말하기 방식’에 대한 그의 고민이 반영된 결과다. 고민은 한국노총이 지난해 만든 홍보 영상 <노동점프>를 보면서 시작됐다.
한국노총은 ‘쇼미더777’에 출연한 ‘마미손’의 ‘소년점프’를 패러디했다. ‘고무장갑’이 뱉은 첫 마디는 ‘쥐꼬리만 한 월급 받고 주말에도 처박혀서 일하는 기분을 니들이 알아?’였다. 강력했다. 이전 노동조합에서 만든 영상들과는 딴 판이었다. 위성수 부국장은 “노동조합 영상은 보통 삐죽삐죽 날이 서 있지 않나. 조합원들이야 영상을 보면 투쟁 의지가 솟지만, (노동조합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겐 어쩐지 불편하고 거부감을 주는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전지적 버스 시점’ 영상엔 ‘~을 해야 한다’는 당위나 집회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버스노동자들의 일상적인 삶이 그대로 담겼다. 조합원이 아니라 국민의 시선으로 보니 버스노동자들이 언제 화장실을 다녀오는지, 밥은 어떻게 먹는지 등의 평범한 소재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물론, 새로운 시도에 조합원들의 실망도 있었다. 자동차노련에서 영상을 만든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겨우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영상에 나와서 평소에 담배를 피우며 했던 이야기들, 술을 마시며 했던 이야기들이나 한다는 반응이 나왔다. 조합원들에게는 영상 속 이야기가 특별히 다가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상은 처음부터 버스 노동자의 노동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 기획은 ‘계획대로 됐다’. 자동차노련이 한국노총 유튜브 채널에 영상을 올린 뒤 구독자 수가 400명 더 늘었고 영상 조회 수도 4편을 모두 합해 40만을 넘었다. 당초 위 부국장이 기대했던 조회 수 20만보다 2배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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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제작자들, ‘삐죽삐죽’ 대신 ‘따듯함’과 ‘공감’에 방점
버스노동자에 대한 인식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영상을 제작하는 PD와 작가들의 노력도 남달랐다. 노동조합과 관련해 영상을 만드는 일은 모두에게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이전 노동조합과는 다른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는 것이 영상을 총괄한 성정훈 PD의 마음이었다. 성정훈 PD는 “최대한 모든 이야기를 버스노동자 분들의 입을 통해서 전달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노동조합의 요구안을 영상 끝에 인포그래픽 방식으로 깔끔하게 담아냈다.
조미현 작가는 무엇보다도 ‘따듯하게’ 이야기를 담아내려 했다. 조미현 작가는 “노동조합이라 하면 투쟁에 어울리는 강한 문구들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더라도 그 전체적인 이미지는 따듯했으면 했다”고 말했다. 조미현 작가가 버스노동자의 파업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가족의 이야기’를 끌어오게 된 배경이다. 조미현 작가는 “(버스노동자) 부부 사례를 생각하던 중에 자동차노련으로부터 부자를 추천 받았다. 그런데 마침 또 삼부자라고 하니 고민의 여지없이 바로 촬영에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버스’라는 제약된 공간에서의 촬영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시간도 제약돼 있었다. 성정훈 PD는 “첫 차에 손님이 오르는 모습은 한 번밖에 찍지 못한다. 그런 장면이 너무 많아서 촬영 내내 집중해야 했다”고 했다. 또 촬영 내내 “승객들이 불편해 할까봐, 기사님들에게는 질문하는 것이 안전운전에 방해가 될까봐” 신경 써야 했다. 그러다보니 촬영을 계획한 10개 장면 중에 7개 장면은 찍지 못했다. 대신, 더 많은 촬영 장비를 활용에 공을 들였다. 성정훈 PD는 “이번 촬영만큼 장비를 많이 쓴 적이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영상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버스 외부에서의 주행 장면이나 내부에서의 다양한 각도를 많이 고민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장면이 나오지 못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각도가 나오기도 하고, 힘들었지만 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한편, 에피소드 영상을 맡은 정성은 PD는 영상 기획에 앞서 곧장 버스 차고지로 달려가 버스 노동자를 만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버스 노동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정성은 PD는 영상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평소 버스의 승객이기도 한 자신이 영상에 나오면 일반 시민들이 보다 더 친숙하게 느낄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정성은 PD가 영상을 만들면서 중점을 둔 것도 노동조합 영상에 대한 편안한 접근에 있다. 정성은 PD는 “버스기사님들의 생활이 일반 사람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갔으면 했다”고 밝혔다.
영상 제작 과정은 PD들에게 버스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성은 PD는 “통행 촬영을 ‘한 탕’ 겨우 하고 포기했다. 두 탕째부터는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일이 정말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촬영 전까지만 해도 버스기사분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연히 월급표 같은 것을 보게 됐는데 아니란 것을 알게 됐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고용 형태에 따라 월급 격차가 심하게 났다. 슬픈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성정훈 PD도 촬영 전까지만 해도 “버스나 택시기사분들이 파업을 한다고 하면 늘 부정적이었다. 버스기사분들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고 고백했다. 정성은 PD와 마찬가지로 “버스기사분들의 급여가 높다고 생각했고 왜 불편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들여다보니 불만은 사라지고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는 성정훈 PD는 “노동환경이 너무나 열악했다. (삼부자 중) 첫째 아드님이 하루에 5시간 반 운전을 세 번 하셨다. 두 번을 쫓아다녔다. 시내버스다 보니까 정류장이 100군데가 넘었다. 그 와중에 신호를 지켜야 하고, 승객들도 응대해야 했다. 버스기사분들이 힘들게 일하시는구나, 그리고 그 고된 노동에 비해 보수가 적구나, 이래서 졸음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고, 불친절할 수밖에 없던 것이었구나, 이해가 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러 불친절한 버스기사님들은 안 계시더라”며 웃었다.
조미현 작가도 “예전에는 버스기사분들이 먼저 인사를 하시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까닥하고 가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한다. 승객의 입장에서 버스기사분들이 기계처럼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승객을 반겨줄 수 있는 업무환경이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위성수 부국장은 “그동안은 노동조합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보도자료로 쏟아내는 식이었다”며 “국민의 시선으로 접근하지 못하니 공감대가 적었다”말했다. 그는 “날 선 텍스트도 필요하지만 이번을 계기로 노동조합 스스로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위성수 부국장은 앞으로도 크고 작은 주제들을 영상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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