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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호 [이슈플러스]주52시간 보완대책, 노동자는 안중에도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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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789회 작성일 20-02-11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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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보완대책, 노동자는 안중에도 없나?

노동시간 단축에 역행하는 노동시간 단축 보완대책
분야를 가리지 않고 후퇴 거듭하는 노동정책

문재인 정부는 휴식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일·생활 균형 및 1,800시간대 노동시간 실현’을 국정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기존에 주당 68시간까지 가능했던 노동시간 상한을 주당 52시간으로 단축하고 특례업종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했다. 개정안은 2018년 2월 국회를 통과해 같은 해 7월 1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2020년 1월 1일부터는 50~299인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될 예정이었던 주52시간 상한제 시행에 제동이 걸렸다. 2019년 12월 11일 고용노동부는 ‘주52시간제 현장안착을 위한 보완대책’을 발표했다. 노동계는 기존의 노동정책과 반하는 내용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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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준비기간 부족하다며 계도기간 부여한 정부

2016년 기준 한국의 연 평균 노동시간은 2,052시간으로 OECD 국가 중 2위를 차지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주52시간 상한제 도입을 통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선물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2019년 12월 11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서울정부청사에서 직접 브리핑을 통해 “50~299인 사업장인 중소기업의 경우 업무량을 자율적으로 통제하기가 어렵고 체계적인 인사노무관리 부족 등 준비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현장의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불가피하게 잠정적 보완조치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보완대책에는 ▲50~299인 기업에 1년간 계도기간 부여 ▲계도기간 중 인력채용, 추가비용 등 정부 지원 강화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 확대 ▲업종별 지원방안 마련 및 추진 등이 포함됐다.
특히, 국토교통부는 노선버스 사업장에 2020년 1년간 버스신규인력 지원 및 안정적인 노선버스 운행을 지원한다. 약 3,100명 수준의 버스운전인력 교육, 군·경찰 대상 운전 자격 취득 지원, 취업박람회 개최 등 신규인력 확보 지원, 지자체별 노선합리화와 용역 지원, 벽지노선 운행 손실금 및 버스 공영차고지 확충과 개선 지원 등이 보완대책에 포함됐다.
이재갑 장관은 “300인 미만 기업의 주52시간제 안착을 위해서는 법률 개정을 통한 제도개선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탄력근로제 등 입법이 늦어짐에 따라 불가피하게 보완조치를 발표하고 추진하게 됐다”면서 “주52시간제는 일과 생활의 균형 제고, 생산성 향상 등 사회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핵심 정책과제인 만큼 정부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주52시간제 현장안착을 위해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월부터는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도 주52시간 상한제가 추진될 것으로 기대했던 노동자들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행을 앞두고 발표된 내용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했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양대 노총은 고용노동부의 대책에 대해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며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고용노동부가 보완대책을 발표한 바로 그날,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부의 발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동시간 단축 흐름에 ‘찬물’ 끼얹었다

한국노총은 ‘특별연장근로 확대 저지! 불법적 시행규칙 폐기! 대정부규탄 기자회견’을 통해 “고용노동부의 보완대책은 명백한 노동시간 단축 포기선언”이라며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만들겠다면서 밝힌 국정과제 가운데 노동존중을 위한 차별 없는 공정사회는 물거품이 됐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여름 2개월에 걸쳐 소속 사업장의 도입실태를 조사한 결과 ‘주52시간 상한제는 이미 현장에서 적응이 마무리됐고 50인~299인 사업장도 노사교섭을 통해 도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고용노동부도 지난해 9월 50~299인 사업장 1,300개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노동시간 단축 준비를 완료한 사업장이 61.0%, 준비 중인 사업장이 31.8%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들 중 준비하고 있지 못 하다고 응답한 사업장은 7.2%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가 보완대책을 실행하겠다고 말한 이유 중 하나인 중소기업 사업장의 준비 부족과 배치되는 부분이다.
한국노총은 “고용노동부의 노동시간 단축 보완대책 발표가 현장에서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노사교섭을 진행해 온 사업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노동시간 단축의 현장안착을 더디게 만드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보완대책으로 언급하고 있는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한국노총은 “자연재해나 국가재난 시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라며 “‘경영상 사유’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통한 특별연장근로 인가는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서 고용노동부가 보완대책을 발표하게 만든 국회의 책임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지난 2018년 11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에 대해 사회적 대화를 공식적으로 요청한 쪽은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라며 “한국노총은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사회적 경제주체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한 일념으로 고심 끝에 승낙하고 노사정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냈음에도 정기국회 처리가 물 건너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동자들이 정상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에 역행하는 정부정책과 정치권의 무능에 맞서 다양한 방법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법률적 대응태세를 갖추어 둔 상태다. 주52시간 상한제도의 목적과 취지를 왜곡하고 있는 정부의 근로기준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 즉시, 헌법소원 및 행정소송 준비절차에 돌입할 방침이다.
또한, 개정 시행규칙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개별 특별연장근로의 인가처분에 대한 취소소송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노총은 “모든 이가 인간다운 삶을 누려야 하는데, 경제상황을 이유로 노동자들에게 고통이 전담된다면 그것은 공정하지 못하다”며 “작고 영세한 사업장의 노동자에게 고통이 집중된다면 이는 평등이 아니며 노동자들은 정부가 정의롭다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우리 연맹도 성명서를 발표하며 정부 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더했다. 연맹은 “지난 2019년 7월 특례업종 제외 300인 이상 사업장 시행 유예에 이어 두 번째”라며 “버스노동자들은 피로운전 해소와 교통사고 예방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무책임하게 지연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노선버스가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이유는 피로운전에 따른 반복된 대형사고 때문이었다. 연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시행되는 노선버스 노동시간 규제가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우려했다.
이어서 “한국노총 탄력근로제 합의와 함께 자동차노련도 주52시간제도 시행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서 “하지만 사용자 측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인력충원과 임금보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맹은 또 이로 인한 노사 갈등이 파업이라는 극단적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지만, 이를 중재하고 관리·감독할 권한이 있는 정부와 지자체는 책임을 회피한 채 계도기간 부여와 전세버스 투입을 통해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권 침해에만 주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연맹은 특히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며, “사용자의 경영상 사유를 포함토록 하는 것은 버스교통의 위험성을 높이는 매우 위험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사용자들은 설·추석·휴가기간 등 특별수송대책기간에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기간에는 도로 정체로 평소보다 두 배 가까이 운행시간이 소요되고 버스운전기사들의 노동강도가 매우 높아져 피로운전과 교통사고 위험성이 심각한 수준까지 이른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상 공동운수협정 등의 해결방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연장근로를 통해 버스운전기사 개인의 총 운전시간을 무한대로 늘리겠다는 것은 버스운전기사뿐만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안중에도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도 특별수송대책기간에 운행횟수 확대만 지시할 뿐 인력확보와 비용부담 등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연맹은 정부에 ▲계도기간 부여 정책 철회 ▲버스교통 정상화를 위한 인력확보와 버스 운행 유지를 위한 재정지원 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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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무엇이 문제인가

위에서 살펴봤듯이 고용노동부의 주52시간 보완입법 중 특히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에 대한 노동계의 반발이 거세다.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재난이나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할 경우 이를 수습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법정 연장근로 한도(주12시간)를 초과할 때 당사자 동의 및 고용노동부 장관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제도다.
고용노동부는 보완대책 중 하나로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인가사유에는 ▲인명의 보호 및 안전의 확보를 위해 필요한 경우 ▲시설·정비의 갑작스러운 장애·고장 등 돌발적인 상황의 발생으로 이를 수습하기 위해 긴급한 대처가 필요한 경우 ▲통상적이지 않은 업무량의 대폭적 증가와 발생하고, 단기간 내에 이를 처리하지 않으면 사업에 중대한 지장이나 손해가 초래되는 경우 ▲<소재·부품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2조제1호 및 제1호의2에 따른 소재·부품과 소재·부품 생산설비의 연구개발 및 그밖에 연구개발을 하는 경우로서 고용노동부장관의 국가경쟁력 강화 및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이 포함됐다.
특히 시설·설비의 갑작스러운 장애·고장 등 돌발적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긴급한 대처의 사례로 ▲갑작스러운 기계고장 ▲대학 등의 합격자 발표 오류 수습 등과 함께 ▲버스운행 중 갑작스러운 교통정체로 불가피한 연장근로가 예시되어 있다.
교통상황은 수시로 변하며 언제 교통정체가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교통정체’를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로 버젓이 예시까지 함으로써, 정부가 버스운전기사들의 장시간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만일 정부의 대책이 실행된다면 사용자들이 요구하고 있는 특별수송대책기간은 물론 언제든지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근거가 될 것이고, 이는 피로운전에 따른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특례업종에서 노선버스를 제외한 법 개정의 목표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국노총도 “지난 2018년 7월 고용노동부 스스로 ‘특별연장근로 인가제도 적용지침’을 발표하며 자연재해나 국가재난 시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임을 확인한 바 있다”며 “‘경영상 사유’까지 확대해 달라는 사용자단체의 요구에 노동시간 단축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보다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라 일갈한 적 있는데 1년 반 만에 180도 태도가 바뀌었다”고 비판했다.
단지 노동시간 단축에서만 노동정책의 후퇴가 나타나는 건 아니다. 최저임금 1만 원을 3년 안에 달성한다던 처음의 약속은 임기 내 달성으로 후퇴했다가 지금은 임기가 끝나도 사실상 달성이 어려운 지경으로 후퇴했다.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사회적 대화로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법 개정안을 만들어 오라고 노사 당사자에게 책임을 미루었다가 합의가 어려워지자 경영계가 요구해왔던 노동3권 무력화 방안을 슬쩍 끼워 넣은 노동법 개정안을 정부입법으로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취임 후 첫 행보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약속하면서 ‘친노동 정부’라고 자화자찬하더니 구체적인 실행방안은 개별 기관들에게 떠넘김으로써 오히려 노사 갈등을 부추기는 꼴이 되기도 했고, 여전히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못한 기관들도 부지기수다.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던 임기 초의 다짐은 온데간데없고, 노동정책은 점점 후퇴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래서는 이전 정부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괜한 기대감만 갖게 함으로써 허탈함과 무력감을 키우기 십상이다. 노동존중사회를 실현하고자 한다면 거창한 구호나 요란한 쇼맨십이 아니라, 작은 목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는 진정성과 노동자와 함께 걸어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