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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호 [뉴스 뒤집어보기]민경욱 의원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60년대 평화시장으로 돌아가자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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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879회 작성일 20-02-11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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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욱 의원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60년대 평화시장으로 돌아가자는 그

10시간이든 100시간이든 일할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그 자유 도대체 누가 달라고 했나요?

대한민국은 꾸준히 장시간 노동 공화국이다. 거의 매년 장시간 일하는 나라로 손꼽혔다. 최근 OECD 조사를 기준으로 해도 장시간 노동 공화국 타이틀을 놓치지 않았다. 2018년 기준 1,967시간으로 OECD 국가 중 장시간 노동 3위이다. OECD 발표에 의하면 1위 멕시코, 2위 칠레, 3위 대한민국이다. OECD 평균인 1,673시간에 비하면 294시간을 초과한다. 단순하게 하루 8시간 노동 기준으로 잡았을 때, 294시간은 약 37일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한 달하고 일주일을 더 일터에서 보낸다.
장시간 노동에서 벗어나자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의 시대정신이 된지 오래다. ‘저녁이 있는 삶’, ‘칼퇴’라는 단어가 대한민국 사회에서 떠돈 지 꽤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 증거다. 대한민국의 많은 시민들은 더 이상 오래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공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시민들의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주52시간 상한제도를 실시했다. 이것도 사실상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으로 주68시간 노동이 가능했던 상황을 근로기준법에 맞게 ‘정상화’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정상화의 과정을 누군가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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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
“주52시간 상한제도 반대한다”
2019년 12월 12일 오후 12시 07분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 하나를 올린다.
누군가의 ‘일할 자유’를 빼앗는다는 것이 민경욱 의원이 주52시간 상한제도에 반대하는 근거다. 100시간 일하고 싶은 사람은 100시간 동안 일할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수사적 표현이라고 치부한다 해도 민경욱 의원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시대정신을 잘못 읽은 것 같다. 많은 설문조사들은 이미 많은 시민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원한다는 결과를 보여줬다.
그렇다면 왜 시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이런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했을까. 적어도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추측해볼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시민들이 노동시간 단축의 긍정적 효과(여가 시간, 가족과 보내는 시간 등의 확대)를 느꼈지만 임금이 줄었다는 조사이다. 두 번째 이유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52시간 상한제도 적용을 최대 1년 유예하기로 한 정부의 결정이다. 고용노동부는 민경욱 의원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기 하루 전인 11일에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에 주52시간 상한제도 계도기간을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으로 표현되는 중소기업이 주52시간 상한제도를 도입할 준비가 덜 됐다는 게 근거였다. 이 두 가지 이유를 민경욱 의원은 ‘일할 자유의 박탈’로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민경욱 의원의 해석은 성급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임금 수준이 하락했다는 사실은 시민들이 임금 수준 하락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원한다는 뜻이다. 선도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 사업장의 노동조합들도 조합원들의 임금 수준 하락으로 인한 불만은 있었지만 노동시간 단축이 현장에 안착되자 다시 장시간 노동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피드백을 받는다. 더 일반적으로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될 때도 비슷한 반응이 있었으나, 만약 다시 주6일제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 시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머릿속에 그려본다면 민경욱 의원의 해석은 성급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작년 결정도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중소기업들이 더 노동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을 ‘못’하는 것이다. 장시간 저임금 노동 체제에 의존해 왔던 대한민국의 경제가 빚은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할 수만 있다면 하는 것이지 일할 자유를 달라는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민경욱 의원은 자유라는 단어 뒤에 숨어 장시간 저임금 노동 체제를 유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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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50주기 앞두고
다시 50년 전으로 돌아가자는 것
2020년 올해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해이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손에 쥐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전태일 열사 외침 하나 하나는 곧 장시간 노동을 철폐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요구였다.
전태일 열사의 외침은 당시 모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엄청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계속 일했다. 오죽하면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자신의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가며, 잠이 오지 않게 하는 약을 먹어가며 일했다. 그 때도 근로기준법은 있었다. 전태일 열사가 손에 쥐고 있던 ‘근로기준법’은 1953년 제정된 노동관계 4개 기본법 중 하나이다. 당시 근로기준법에는 하루 8시간 노동, 주48시간 노동 등이 역사상 처음으로 규정됐으나, 현실에서는 근로기준법이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1958년 제조업 부문 기업체 대부분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0시간 이상이었다. 당시 전국 약 650개에 이르는 자동차 운수사업에 종사하는 13만 명의 노동자는 하루 18시간 중노동에 시달렸다. 전태일 열사가 일한 평화시장 봉제공장으로 대표되는 섬유산업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어린 소녀들이었고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의 교대제 근무를 수행했다.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1960년대에 노동시간은 더 연장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50년 만에 1953년 근로기준법에 명시됐던 하루 8시간 노동이 이제야 법적 실효성을 가진 것이고 사회문화적으로도 자리 잡은 것이다. 그것도 300인 이상 사업장만 해당한다. 그렇기에 민경욱 의원의 주장은 노동시간 단축의 50년 역사를 부정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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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운전노동자의 삶,
대표적 장시간 노동의 폐해
버스운전노동자의 삶만 돌아봤더라도 민경욱 의원은 그런 글을 쉽게 쓰지 못했을 것이다. 대표적 장시간 노동 사업 부문인 버스운수산업은 장시간 노동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또한 버스운수산업의 장시간 노동 관행은 노동자의 생명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까지도 위협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버스운전노동자의 졸음운전 사고는 장시간 노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연맹이 발간한 ‘2018년 버스노동자의 근로실태 및 개선방향 보고서’를 통해 버스운전노동자의 노동 실태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전체 버스운전노동자의 하루 평균 실 운전시간은 11시간 17분, 근무일 구속시간은 13시간 11분으로 실 운전시간만 따져도 하루 8시간 노동을 훌쩍 넘는다. 시내버스 평균 실 운전시간은 11시간 17분, 근무일 구속시간은 13시간 8분이고, 농어촌버스 평균 실 운전시간은 11시간 23분, 근무일 구속시간은 14시간 5분이다. 시내버스와 농어촌버스 모두 평균과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결과로 버스운전노동자 대부분이 장시간 노동에 놓여있다는 뜻이다.
특히 근무일 구속시간을 주목해야 한다. 구속시간은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을 합친 개념이다. 버스운전노동자들은 운전시간 이외 근로기준법 상 노동시간으로 차량 운행 전·후 준비, 정리시간, 1회 운행 후 휴식시간 중 세차·주유 등 부수업무 시간이 인정된다. 법원 판례에 따른 해석인데, 1일 구속시간을 산정하는 이유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휴게시간에도 버스운전노동자들은 쉬지 못한 채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스운전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약 14시간을 일하고 있는 셈이다. 민경욱 의원이 말한 ‘일할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 버스운전노동자들은 벌써 몇 십 년째 노동시간 단축을 주요한 요구로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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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근면의 신화는 NO
우리에게는 일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해
민경욱 의원의 주장은 민경욱 의원만의 생각은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을 도덕적 해이로 보는 사람들도 있기에 노동시간 단축이 시대정신임에도 민경욱 의원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그들의 믿음의 바탕에는 근면 신화가 자리하고 있다. 쉬지 않고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신화이다. 이 신화는 온 국민이 밥 한 끼 먹는 것도 감사해야 했던 시기에나 먹혔던 신화이다. 실제로 밥이 없었고 땀 흘려 일하면 밥을 먹을 수 있고 자신이 먹는 밥을 가족들도 먹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에는 그런 삶을 국가적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물론 그 시기일지라도 비인간적이고 살인적인 노동시간을 감내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은 그런 시대는 아니다. 그런 삶을 국가적으로 강조하고 강요했던 60년대, 70년대가 아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GDP 기준 세계 경제 순위가 12위나 되는 나라이다. 12위씩이나 달성할 수 있었고,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법이 장시간 노동 체제였다고 선전하기에는 씁쓸하다. 경제 수준에 걸맞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누려야 외부적으로도 내부적으로도 단단한 나라일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도 근면의 신화에서 탈피해 일하지 않는 시간을 충분히 누릴 자유가 있는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 일하지 않는 시간은 의미가 있다. 인간은 일하는 ‘나’만 있지는 않다. 책을 읽고 싶은 ‘나’도 있고, 운동하고 싶은 ‘나’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부모로서 ‘나’도 있고, 자식으로서 ‘나’도 있으며 배우자 혹은 연인으로서 ‘나’도 있다. 다양한 ‘나’들의 총체인 인간이 그 합을 모두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일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일하지 않는 시간은 사용자에게도 의미가 있다. 요즘 CEO들은 노동자들의 생활영역에까지 관심을 갖는다. 사용자들은 자기가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가 생활영역에서 엉망으로 살아 건강이 나빠져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생활영역에서도 굉장히 잘 살아가길 바란다. 그래서 직무 스트레스만 관리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 스트레스에도 관심이 많고, 그러한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경영체계를 만들려는 게 최근 경영계의 움직임이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사업체가 일정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일정한 생산력을 유지하는 게 기본 목표일 것이다.
이렇듯 일하지 않는 시간은 노동자에게도, 사용자에게도 모두 중요한 시간이다. ‘일할 자유’보다는 ‘일하지 않는 시간을 누릴 자유’에 대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앞두고 고민해볼 시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노동시간 = 돈’이라는 등식이 깨져야 한다는 것이다.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라곤 노동력이 유일했던 시기에 저임금으로 더 많은 시간 일을 시키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강제했던 게 이 등식이다. 그런데 세계 12위권 경제대국이 된 지금도 이 등식은 깨지지 않고, 오히려 더 공고해지고 있다. 노동시간이 곧 돈이니 연장근무를 놓고 동료들과 얼굴을 붉히는 경우마저 발생한다.
그러나 누구 말처럼 “정규시간만 일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임금 수준이 된다면 누가 자기 건강 망쳐가면서까지 오랫동안 일하려고 하겠는가?” 하루 8시간 노동으로도 나와 가족이 충분하게 생활할 수 있을 정도까지 임금 수준을 높이는 것을 전제로 노동시간과 돈의 상관관계를 깨뜨릴 때, 일하지 않는 시간을 누릴 자유가 보장될 것이다.
그리고 민경욱 의원을 포함한 정치인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자유’를 핑계로 국민에게 더 일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일하지 않는 시간을 누릴 자유를 향유할 수 있도록 사회의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