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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호 [경제, 이렇게 쉬운 거였어?]물가가 안 올라서 걱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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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1,164회 작성일 20-02-11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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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안 올라서 걱정이라고?

아직 디플레이션 아니지만 조짐이 보인다
면밀하게 살펴 대응책 고민할 때

“경제가 어렵다!”
요즘 들어 매일 같이 들리는 말 중 하나다. 그런데 경제가 어떻게 어려운지 설명이라도 들어보려 하면 복잡한 숫자들과 생소한 용어들이 튀어나온다. 뉴스에서 수출이 잘 안 된다는 둥,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둥, 경제성장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둥 이야기하니 어려운가보다 할 뿐이다. 그런데 정부는 경제상황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어느 쪽을 믿어야 할까? 이번 호부터 어렵게만 느껴지는 경제 이야기를 차근차근 쉽게 풀어보는 코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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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한 마디로 “내 월급만 빼고 모든 게 다 오른다”고 표현했다. 자고 일어나면 물가가 올라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요새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물가가 너무 안 올라서 걱정”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경제, 이렇게 쉬운 거였어?’ 첫 번째는 ‘물가’ 이야기다.

물가지수는 어떻게 산출할까?

“어? 물가가 안 오르면 좋은 거 아냐?” 당연한 질문이다. 예전에는 물가가 너무 올라서 쥐꼬리만큼 오르는 월급으로는 뛰는 생필품 가격을 따라잡기에도 버거웠다. 그러니 물가가 안 오르고 안정된다면 당연히 좋은 것 아닌가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물가가 안 오르는 게 문제라고 할까? 그 이유를 설명하려면 어렵게만 느껴지는 경제용어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용어가 가리키는 바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으며,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경제용어, 낯설기 때문에 어려워 보일 뿐이지, 알고 보면 별 것 아니다. 경제용어에는 유난히 영어 표현이 많이 들어가는데, 경제가 작동하는 원리를 설명하는 학문인 경제학이 원래 영국에서 출발했고, 최근 경제학 이론을 이끌어가는 주류세력은 미국 학자들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면 된다.
경제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용어 중 설명이 필요한 첫 번째 용어는 ‘GDP’이다. Gross Domestic Product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용어로 ‘국내총생산’이라고 번역된다. 우리나라 국경 안에서 이루어진 총생산이 얼마나 되는가를 나타내며, 보통 달러화를 기준으로 표시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2018년 GDP가 1조 7천억 달러라고 하면, 2018년 한 해 동안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 새롭게 생산된 생산물의 가격 총액이 1조 7천억 달러라는 의미다. 새롭게 생산된 생산물의 가격 총액은 각 생산단계마다 덧붙여지는 가치, 즉 부가가치의 총합으로 구해지는데, 이는 최종생산물의 가격과 같다. 따라서 복잡하게 각 생산단계마다 얼마나 덧붙여졌는지를 계산하기보다는 최종생산물의 가격 총액을 합산하면 쉽게 구해진다.
GDP는 명목GDP와 실질GDP로 구분된다. 명목GDP는 경상가격GDP라고도 하는데, 최종생산물의 가격을 생산된 시점의 가격으로 산출한 값이다. 즉 2018년 명목GDP는 최종생산물의 수량에 2018년 당시의 가격을 곱해 구해지는 값으로,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실제 가격을 반영하고 있다.
실질GDP는 불변가격GDP라고도 하며 최종생산물의 가격을 기준연도의 가격으로 산출한 값으로, 최종생산물의 수량에 기준연도의 가격을 곱해 구한다. 명목GDP와는 달리 가격 변화의 영향을 제거한 값으로, 생산물의 양이 얼마나 늘었는지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 경제상황을 이야기할 때 자주 접하게 되는 경제성장률은 실질GDP의 증가율을 뜻한다.

< 노선소유권과 운영형태에 따른 버스운영방식의 분류 >

구분 산출 공식 특징
명목GDP 최종생산물 총량 × 해당연도의 가격 실제 물가수준 반영
실질GDP 최종생산물 총량 × 기준연도의 가격 기준연도 대비 생산물의 양 반영
GDP디플레이터 명목GDP / 실질GDP × 100 종합적인 물가지수

장바구니 물가는 뛰는데 물가가 안 올랐다고?

예를 들어 알아보자. 우리나라가 2018년에 생산한 최종생산물은 A와 B라는 두 종류의 상품이고, 두 상품의 2018년 가격은 각각 100원과 200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A 상품의 생산량은 1,000개이고, B 상품의 생산량은 100개이다. 이 경우 우리나라의 2018년 명목GDP는 (A 상품 생산량 × A 상품 가격) + (B 상품 생산량 × B 상품 가격) = 12만 원이 된다.
2015년을 기준으로 한 2018년의 실질GDP를 구해보자. A, B 두 상품의 2015년 가격이 각각 60원, 160원이라면 우리나라의 2018년 실질GDP는 (A 상품 2018년 생산량 × A 상품 2015년 가격) + (B 상품 2018년 생산량 × B 상품 2015년 가격) = 7만 6천 원이 된다.
만일 A, B 두 상품의 2015년 생산량도 2018년과 같이 각각 1,000개, 100개였다고 가정하면, 똑같은 방식으로 2015년 명목GDP도 7만 6천 원이 된다. 이 경우 생산량은 늘어나지 않았지만 물가가 오른 만큼 명목GDP는 커진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실질GDP는 생산량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변동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명목GDP와 실질GDP 값이 구해지면, 명목GDP를 실질GDP로 나누고 100을 곱한 값을 계산하는데, 이 값을 GDP디플레이터라고 한다. GDP에는 다양한 가격지수들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있으므로, GDP디플레이터는 국민소득에 영향을 주는 모든 물가 요소들을 포괄하는 종합적인 물가지수로 볼 수 있다. 앞의 예에서 GDP디플레이터를 계산하면 약 157.9가 나오는데, 이는 2015년에 비해 2018년의 종합 물가지수가 57.9% 올랐다는 의미다.
여기에서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두 가지 상품만으로 경제가 구성된다고 가정했지만, 실제 경제는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도 매우 다양하고, 이에 따라 필요한 물가지수도 여러 가지다. 국민들의 소비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상품들의 물가수준을 계산한 소비자물가지수,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원재료 등의 상품을 통해 계산한 생산자물가지수, 수입과 수출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한 수출입물가지수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임금, 환율 등 각종 가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GDP 값을 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최종적으로 발표되는 물가지수와 체감물가 사이에는 차이가 생기기도 한다.
흉년이 들어 농산물가격은 급격하게 올랐지만 원유가격이 낮아져 공산품가격도 연쇄적으로 하락했다면 물가는 오르지 않았거나 심지어 낮아진 것으로도 나타날 수 있다. 시장에서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는 올랐는데 뉴스에서는 물가가 안 올라서 걱정이라고 하면 물가를 발표하는 한국은행이나 통계청이 거짓말을 한다고 단정하기 쉽지만, 그 이면에는 이러한 사정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혹시 일본처럼 디플레이션은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구해지는 물가가 너무 안 올라서 걱정이라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2019년 한 해 동안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4%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중기 물가안정 목표로 삼고 있는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0%임을 감안하면 확실히 물가가 너무 안 오른 것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012년에 2.2%를 기록한 이래 2013년과 2014년 2년 연속 1.3%에 머무르다가 2015년에는 0.7%까지 떨어졌다. 2016년에 1.0%를 기록한 이후 2017년과 2018년에는 1%대를 유지했지만, 2019년 들어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0%대로 떨어졌고, 9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결국 2019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4%로 1965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경제성장률은 실질GDP 증가율을 뜻하는데, 실질GDP의 증가는 거래되는 상품의 양이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품의 가격이 일정하거나 올랐다면 상품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명목GDP도 증가하게 된다. 상품의 가격이 낮아지는 경우에도 거래되는 상품 총량의 증가가 가격 인하를 상쇄하는 것이 보통이다.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관찰하면 경제성장이 물가의 상승과 동행하는 일반적인 추이가 확인된다. 다른 한편 거래되는 상품의 양이 늘었다는 것은 경제가 그만큼 활발하게 돌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물가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을 두고 여기저기서 걱정들이 쏟아진다. 물가가 너무 안 오르는 것이 혹시 경제의 활력이 떨어져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다.
물가가 안 오르는 것 자체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원인이 경제의 활력 저하와 침체 때문이라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경제학에서는 경제 전반에 걸쳐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을 디플레이션(deflation)이라고 한다.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면 상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데,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설명이 맞지 않게 된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그런 물가 하락이 다시 소비에 악영향을 주는 식으로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시작된 경제 침체가 20여 년간 지속됐는데, 이를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본의 1994년 1분기 GDP디플레이터를 100이라고 했을 때 2013년 2분기의 GDP디플레이터는 83.9까지 떨어졌다. 20년 동안 물가가 16% 하락한 것이다.
경제학 이론대로 한다면 가격이 떨어졌기 때문에 수요가 늘어나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면 더 이상 낮아지지 않고 다시 올라야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집값이 떨어지는 추세일 때 집을 샀다가 더 떨어지면 손해를 본다는 심리가 작동하면서 수요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집값 하락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쳐 GDP디플레이터가 지속적으로 하락한 것이다. GDP디플레이터가 100보다 작다는 것은 실질GDP보다 명목GDP가 더 낮다는 의미인데, 일본에서 GDP디플레이터가 상승세로 반전한 것은 2013년 하반기 이후의 일이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였다. 지금도 여전히 일본의 명목GDP는 실질GDP보다 낮은 수준이지만, 그 격차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이런 사례를 참고할 때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서와 같이 GDP디플레이터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지 유심히 살펴보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물가가 안 올라서 걱정이라는 이들의 주장이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고, 경제구조도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아 일본의 전철을 따라갈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이 위험한 이유, 경제 침체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생길까? 우선 디플레이션 아래서는 GDP디플레이터가 낮아지는데, 이는 곧 현금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물가가 낮아지기 때문에 같은 금액으로 더 많은 상품이나 서비스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물가가 낮아지기 때문에 살림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도 한다. 생산자에게도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최종생산물의 가격이 낮아지겠지만, 원자재 가격과 임금도 낮아지기 때문에 비용 자체가 낮아지는 것이다. 따라서 상품의 가격을 낮춘다 하더라도 이윤은 늘어날 수도 있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주가는 하락하고, 부동산 가격도 하락한다. 투자를 하는 경우라면 주식이나 부동산보다는 현금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현금에 준하는 자산이나 안전한 채권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 디플레이션 아래서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은 빚을 진 사람이다. GDP디플레이터가 낮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채무액의 실질가치가 늘어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 아래서 이처럼 유·불리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 게 큰 문제는 아니다. 디플레이션이 정말로 위험한 것은 경제 자체가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 하락세가 멈출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아무리 유리하다고 해도 집이나 자동차 같은 고가의 상품을 사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기업도 가격이 더 하락할 수 있기 때문에 설비투자를 뒤로 미루게 된다. 이렇게 소비와 투자가 감소하면 가격은 더 떨어지고 생산은 위축된다. 생산 위축은 고용 감소와 임금의 하락을 부채질하고, 소비의 재원이 될 임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수요는 더욱 감소한다. 가격 하락이 수요 하락을 부추기고, 수요 하락은 다시 가격 하락을 부채질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채무의 실질가치가 증가하기 때문에 빚을 진 사람은 채무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처분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시장에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더욱 하락하게 된다. 따라서 미처 갚지 못한 채무의 실질가치는 더욱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면 빚을 진 개인과 기업은 파산하게 될 수도 있고, 심하면 은행이 도산할 수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가계부채가 위험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됐다. 디플레이션이 채무자에게 불리한 만큼, 빚을 지고 있는 가계는 실제로 디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디플레이션의 초기라고 의심할 만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에 우리나라의 GDP디플레이터는 2018년 3분기에 비해 1.6% 하락했다. 같은 기간에 실질GDP는 2.0% 증가했지만 명목GDP는 0.4% 증가에 그쳤다. 명목GDP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디플레이션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디플레이션의 초입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의심을 품기에는 충분한 수치다. 더구나 GDP디플레이터는 2018년 4분기 이후 4분기 연속 떨어지고 있는 상태다. 단군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라던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나타나지 않았던 일이다.
아직은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있고, 소비자물가지수를 비롯한 물가지수도 소폭이나마 오르고 있다. 그래서 아직은 디플레이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경제 곳곳에서 디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아직 아니라고 안심하지 말고 GDP디플레이터의 변화 추이를 면밀하게 관찰하면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