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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호 [이슈플러스] ILO 기본협약 관련 노조법 개정 두고 커지는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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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533회 작성일 19-11-1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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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기본협약 관련 노조법 개정 두고 커지는 논란

정부, 하반기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 노조법 개정 동시 추진
관련 노조법 개정이 ILO 정신에 맞는지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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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올해는 국제노동기구(ILO)가 설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ILO의 목표는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을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노동을 지향하기 위해 1991년 152번째로 ILO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28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는 8개 기본협약 중 결사의 자유 및 강제노동에 관한 4개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ILO 기본협약 4개 모두를 비준하지 않은 나라는 중국, 마샬제도, 팔라우, 통가, 투발루 등 5개국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ILO 기본협약 비준을 말했다. 대선 공약집에서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며 ILO 기본협약 비준과 필요한 관련법 개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ILO 기본협약 비준을 통한 노동기본권 보장 실현은 요원해 보인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두고 노사는 이렇다 할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 7월 30일 정부가 입법발의한 ILO 기본협약 비준에 필요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로 넘어갔지만 내용을 두고 논란이 다시 일었다. 내용이 ILO 기본협약과 무관하며 ILO의 정신에도 위배된다는 비판 때문이다.

경사노위 통해 2018년 7월부터 시작한 ILO 기본협약 논의
노사 입장 차만 확인, 공익위원안만 도출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 사항이었던 ILO 기본협약 비준은 2018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ILO 기본협약 비준 시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정부는 노조법 당사자인 노사가 모인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관련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사노위 산하 의제별위원회인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이하 위원회)에서 논의를 진행했다. 2018년 7월부터 2019년 5월 20일까지 많은 회의를 거쳤지만 노사의 입장 차이가 커서 합의에 실패했다. 그 와중에 위원회 공익위원들은 두 차례 공익위원안을 도출한다. 2018년 11월 20일과 2019년 4월 15일이다. 지난해 11월 도출한 공익위원안은 단결권 관련 제도 개선사항을 우선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올해 4월 공익위원안이 최종안으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과 관련한 제도 개선방향을 담고 있다. 단결권과 관련해 해고자, 실업자, 공무원, 교원의 노조 가입이나 활동이 가능한 방향으로 노조법 개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지난 5월 20일 경사노위 논의 종료 후 이틀 뒤인 22일에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향후 정부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의 핵심은 ▲미비준 4개 기본협약 중 3개 협약 비준 추진 ▲협약 비준에 요구되는 법 개정 및 제도개선 함께 추진 등이다. 4월 15일 발표한 경사노위 최종 공익위원안을 포함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도 전했다. 특이사항은 ‘선비준’이냐 ‘선입법’이냐 선택지에서 ‘동시 비준 동시 입법’을 정부 입장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이재갑 장관은 “선비준 후입법은 우리나라의 헌법 체계상 사실상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 7월 30일 정부는 ILO 기본협약 비준에 필요한 노조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현재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은 입법예고 기간을 거처 10월 7일 국회로 회부된 상태이다. 3일 전 10월 4일에는 결사의 자유 보장을 담은 ILO 협약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 금지가 담긴 제29호에 대한 비준 동의안을 국회로 넘겼다.

ILO 기본협약 중 우리나라가 미비준한 기본협약은?

ILO 기본협약은 ILO 회원국이라면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사항이다. 4개 분야 8개 기본협약으로 구성돼 있다. 4개 분야는 4대 원칙이라고도 하는데, 결사의 자유·강제노동 금지·아동노동 금지·차별 금지 등이다. 각각의 원칙에 따른 기본협약이 각각 두 개씩이어서 모두 8개 기본협약이다. 결사의 자유에는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장에 관한 협약’과 ‘제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에 대한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이, 강제노동 금지에는 ‘제29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과 ‘제105호 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협약’이, 아동노동 금지에는 ‘제138호 취업 최저연령에 관한 협약’과 ‘제182호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 폐지에 관한 협약’이, 차별 금지에는 ‘제100호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남녀노동자 동일보수에 관한 협약’과 ‘제111호 고용 및 직업상 차별대우에 관한 협약’이 들어있다.
현재 우리나라가 비준하지 않은 ILO 기본협약은 ‘강제노동 금지’ 관련 협약과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이다. 강제노동 금지 관련 29호는 강요된 모든 노동을 금지한다는 뜻이다. 결사의 자유 관련 87호는 누구든 자유롭게 노조 설립과 가입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98호는 노조활동을 이유로 고용 거부나 해고 등 불이익을 금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가 미비준한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게 되면 모든 노동자는 노조를 만들어 가입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ILO 기본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ILO 결사의 자유 관련 기본협약이 비준되면, 조합원 중에 해고자가 있다거나 특수고용노동자가 있다는 이유로 설립신고증을 받은 이후에도 노조활동을 제약받는 노조들이 활동을 보장받을 수 있다. 현재 플랫폼 노동 증가로 많아지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도 모여 노조 할 권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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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국회로 넘어간 ILO 기본협약
관련 노조법 개정 두고 시끌

정부가 국회로 넘긴 노조법 개정안은 노조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을 기본협약 기준에 맞도록 일부 개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가 지난 4월에 발표한 공익위원 합의안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의 개정안은 실업자·해고노동자 노동조합 가입, 공무원·교원의 노동조합 가입범위 확대 등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ILO 기본협약에도 미치지 못하는 내용과 함께 기본협약과 무관한 노조법 개정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리나라의 상황을 반영한다는 이유로 노동조합 임원 자격을 일정 부분 제한하고 근로시간면제제도를 유지하는 내용들이 있기 때문이다. 관련 규정들을 노동조합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ILO 협약 내용에 반하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EU와 FTA 관련 분쟁 원인을 없애기 위해 ILO 기본협약 비준이 필요하다면서도 EU가 지적한 특수고용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보장 문제에 대해서는 노조법 개정안에 반영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면, 노조법의 경우 제2조 제4호 라목 단서를 삭제해 실업자 및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는 사용자의 효율적인 사업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업(장)에서 노조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장 출입 및 시설 사용에 관한 노사 간 합의된 절차 또는 사업장 규칙 등을 준수해야 하며, 사용자는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사업장 출입 등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해 노동조합활동을 제한하였다.
또한, 근로시간면제 한도와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 및 쟁의행위 찬반투표 등 조합원 수 산정 시 조합원 수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한편 기업별노조에서 대의원 및 임원은 그 사업(장)에 종사하는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도록 해 실업자 및 해고자의 대의원 및 임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상 실업자 및 해고자는 조합원 지위만 인정하고 실질적 노조활동은 어렵게 한 것이다. 기업별노조의 임원 또는 간부를 하다가 해고를 당해 해고의 효력을 다투고 있는 경우도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까지만 조합원 지위가 유지되도록 한 규정도 그대로이다.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문제와 관련해 노조법 개정안에서서는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을 삭제한다고 하면서도 근로시간면제한도는 그대로 유지했다. 또 법이 정한 타임오프 한도를 넘어서는 노사합의를 무효로 하고 급여지급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ILO가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제도에 관해 국가가 입법적 관여를 하지 말 것과 관련 제도폐지를 권고해왔으나 이의 수용을 거부한 것이다. 개정 노조법상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노사가 교섭으로 정한 급여지급 협약도 그 한도를 초과해서는 무효로 하는 강행규정이라는 비판이 있다.
무엇보다도 노동계는 ILO 기본협약 비준과 무관한 사용자의 대항권 강화 차원의 법률안이 함께 발의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경영계는 경사노위 논의 당시부터 사용자의 대항권 강화차원에서 ▲파업 시 대체근로 전면 허용 ▲부당노동행위제도 처벌조항 폐지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현행 2년에서 4년)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보완 등을 요구했다. 정부는 경영계의 요구사항 중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직장점거와 관련해 생산 기타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로 이뤄지는 쟁의행위 금지를 개정안에 담았다.

ILO 정신을 다시 생각해야 할 때

지난 10월 16일 팀 드 메이어(Tim De Meyer) ILO 국제노동기준국 선임정책자문위원이 한국을 방문했다. 팀 드 메이어 위원은 정부의 ILO 기본협약 비준과 관련 입법 동시 추진 방침에 대해 “더 이상 기본협약 비준을 미룰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협약 비준을 먼저 한 뒤 관련법을 정비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팀 드 메이어 위원은 “한국의 사회적 문제인 높은 비정규직 비율과 낮은 출산율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중요한 것은 관련 정책을 만드는 데 해당 정책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87호, 제98호 협약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이 10% 수준인 상황에서 미조직 노동자에 대한 결사의 자유 보장이 사회 문제 해결의 필수 요건임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팀 드 메이어 위원은 “노동기준을 강화하면 단기적으로 개별 기업의 비용은 증가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경영계 전반에 혜택이 클 것”이라며 “노동자의 구매력이 커지고 기업 이익이 개선되며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다. 불평등과 빈곤이 심화하면 경제성장 기반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ILO 기본협약 비준으로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한 비판이다.
현재 모양새가 어찌됐든 ILO 기본협약 비준 동의안과 관련 노조법 개정안은 국회에 넘어가 있다. 국회의 선택이 중요해진 순간이다. 국회의 선택은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의 선택이다. 하반기 국회 일정이 불투명하지만, 국회로 공이 넘어간 지금 ILO 기본협약의 바탕이 되는 ILO 기본원칙 4가지 명제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ILO가 기본원칙으로 제시하는 4가지 명제는 다음과 같다.

⒜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 결사와 표현의 자유는 지속적인 진전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에 위험으로 작용한다.
⒟ 빈곤에 대한 투쟁은 각 회원국 차원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속돼야 하며, 자율적이고 단결된 국제적 노력으로 노사대표는 정부대표와 동등한 지위에서 공공복지 증진의 관점에서 자유로운 협의와 민주적 결정에 참여한다.